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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㊸ 대구시 불로전통시장5, 10 장날이면 경북도내 노점들 운집... 대구 도심 장터로 인기
대구시 동구 불로전통시장은 대구시 도심에서 열리는 5일장으로 유명하다. 5, 10 장날이면 도내 노점, 행상들이 장터로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한상갑 기자

주변에 5개 지역을 하나로 묶은 뒤 날짜를 달리하여 열었던 5일장은 조선 후기 상업의 중심이자, 향촌 경제의 근간이었다. 지금도 지방 소도시에서 5일장은 지역 경제의 축이면서 마을의 축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농(離農), 농촌인구 감소로 위기에 처한 농촌의 오일장은 단순한 물자의 유통을 넘어 공동체를 지탱하는 구심점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오일장 하면 당연히 지방을 먼저 떠올리는데, 대도시 한복판에도 5일장이 활성화된 곳이 있다.대구시 동구 불로전통시장의 장날(5, 10일)엔 진풍경이 펼쳐진다. 군위, 하양, 영천 등지에서 온 장꾼들로 주변 도로가 온통 북새통을 이룬다. 대도시와 전통시장이 동거(同居) 하는 불로전통시장으로 떠나 보자.

◆김천·영천·반야월·하양장과 함께 경북 5대 오일장=1930년대 문을 연 불로전통시장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의 양대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근대 이후 한때 김천, 영천, 반야월, 하양장과 함께 경북 도내 5대 5일장으로 불릴만큼 장세(場勢)를 자랑했다. 전성기였던 1970년대엔 나무시장, 쇠전(우시장), 토끼시장 등 품목별로 나눠 장이 설 정도였다고 한다.

대구시 동구의 작은 행정기구에 불과한 불로동에 이런 큰 시장이 들어선 근거는 주위 지형과 역사 배경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시장의 동편에는 불로동고분군이 펼쳐져 있다. 그 규모만 211기에 이를 만큼 ‘국가급’ 세력이 고대에 여기서 터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5~6세기 삼국시대 불로동 일대를 지배하던 큰 정치세력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불로동을 끼고 있는 금호강은 근대 육상운송이 발달하기 전까지 낙동강을 연결하던 수운(水運)의 중심이었다. 지리적으로도 불로동 일대는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에 이어 근대까지 대구와 경북의 상권을 잇는 유통, 물류, 조운(漕運)의 중심지였다. 이런 육상, 수상 교통의 요지에서 상업과 장시(場市)가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불로동 일대 어르신들이 집에서 재배한 채소로 좌판을 열고 있다.

◆1980~90년대 무침회, 아나고회 골목 명성=40~50대들에게 불로시장은 무침회 골목으로 각인되어 있다. 시내 반월당, 향촌동, 대백 뒤 술집을 전전하던 주당들이 별미를 찾아 원정을 갔던 곳이 불로시장이다.

당시엔 횟집이 지금처럼 대중화 되지 않았다. 점포도 많지 않았지만 당시 가격이 너무 비싸 일부 부유층들이 드나들던 ‘럭셔리 계열’로 분류됐다. 불로동에 무침회는 삶은 오징어, 소라, 가오리와 야채를 초장에 무쳐낸 것이다. 짭조름한 양념맛과 얼큰한 해물은 막걸리 조합과 딱 맞아 시내 술꾼들 불러들였다.

그렇다고 (부유층 전유물인) 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불로동에는 아나고회가 따로 있어 날 것을 좋아하는 술꾼들의 인기를 끌었다. 달달한 맛에 뼈째 썰어내는 아나고회는 무침회와 함께 불로동에 시그니처 메뉴를 형성했다.

당시에는 시장 일대에 20여곳 횟집이 늘어서 '무침회 특구'를 형성했다. 지금도 ‘태평양회식당’ 등 2~3곳이 남아 옛날에 향수를 환기 시켜 준다. 45년 전통의 태평양회식당은 불로동에 무침회 메뉴를 처음으로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 무침회 상권이 지금은 서구 반고개 근처로 이동해 대구의 10미(味) 중 하나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다. 사랑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때로 상권도 맛도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해물전에서 팔고 있는 돔배기 역사도 재미있다. 2002년 93호 고분 발굴 때 상어 뼈가 발견됐는데 영남 내륙 한복판에서 상어 뼈가 발견된 것 자체로 학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당시 해상·육상교통로 연구, 장례 풍습, 염장(鹽藏) 기술과 음식문화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서 주목을 끌었다. 당시 망자의 최애 식품이었을 상어 고기가 1500년의 세월을 넘어 무덤 바로 옆 시장에서 공유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지난 15일 장날 모습. 웬만한 시골 장터처럼 인파가 붐비고 있다.

◆온라인 쇼핑·대형마트와 오일장 공존 ‘신기’=지난 15일 불로동 전통시장 취재에 나섰다가 시장 입구에서 10분 넘게 차 안에 갇혀 있었다. 구 불로교 일대 차량이 정체돼 한참을 지체 했다. 팔공로 길과 시장 주변 도로엔 주차된 차로 말 그대로 차반 사람 반이었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장터 입구에 섰는데 시장 안은 교행이 힘들 정도로 더 붐볐다. 휴일과 장날(15일)이 겹친 탓도 있겠지만, 근래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그동안 억눌렸던 쇼핑, 외출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는 것 같았다.

마침 날씨도 선선해지자 불로동 주변의 어르신들도 함지박을 이고, 손수레를 끌고 나와 여기저기 좌판을 펼쳤다.

시장에서 만난 이진한(68세) 씨는 “불로동은 대구에 한복판이지만 1970~80년대부터 시골 시장 전통이 살아 있다”며 “아마 불로동 일대가 옛날부터 군위, 하양, 영천의 상인들이 대구로 드나들던 전통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지금도 불로동 장날이면 군위, 하양, 경산은 물론 고령, 성주의 노점, 행상들이 새벽부터 몰려든다고 한다.

시장 좌판엔 가을철을 맞아 각종 과일, 야채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여기저기 흥정소리에 절로 흥이 난다. 불로전통시장의 먹거리 명물에는 닭발, 돼지껍데기 등 올드 푸드들이 주류를 이룬다. 식당엔 나이 지긋한 60~70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반주를 겻들인 점심을 즐기고 있다.

추어탕 한 그릇을 먹고 시장을 나오는데 아직도 오후 장터엔 인파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 머릿 속에 선명한 물음표 하나가 찍힌다. 온라인쇼핑, 대형마트, 비대면 마케팅이 판을 치는 세상에 대구도심 한 켠에 이런 장터가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우리 민족에겐 확실히 ‘장터 DNA’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하루였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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