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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영 작가의 '문학으로 배우는 우리 역사'>해인사를 폭파하라!

1951년 12월,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빨치산 토벌작전이 벌어졌다.

항공 지원명령이 떨어지자, 전투기 4대가 지리산 인근으로 출격했다. 지상 동향을 파악하던 미 공군은 정찰기를 보내 전투기의 공격 목표를 잡아주었다.
바로 해인사였다.

전투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대령은 목표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절대 내 명령 없이는 폭탄을 투하하지 마라! 기관총으로만 해인사 주변 능선에 사격하라.”
편대장은 모든 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날 밤, 미 공군의 소령이 김영환 대령을 찾아왔다.
“왜 지시대로 폭탄을 투하하지 않았소?” 미 공군 소령은 김영환 대령을 추궁했다.

“연기를 똑똑히 보았으나, 그 명령에 따를 수 없었소. 연막탄이 떨어진 곳은 해인사였소.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이란 말이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공군도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은 교토를 폭격 대상에서 제외했던 걸로 알고 있소. 게다가 제2차 대전 시 프랑스가 파리를 살리기 위해 프랑스 전체를 나치에게 넘겼소. 나 또한 마찬가지였소. 무장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파괴할 수는 없었소.”

김영환 대령의 결단력 있는 판단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일을 기억하기 위해 해인사 길목에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를 세웠다.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다는 말이 있을 만큼 엄격한 곳이다. 그런데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김영환 대령은 명령을 거역했다.

과연 팔만대장경에 어떤 가치가 담겨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 팔만대장경의 가치

8만 1,258판, 5천200만자! 엄청난 양에 놀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필 추사(秋史) 김정희는 팔만대장경을 보고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라고 할 만큼 구양순체로 조각된 글자는 매우 정교하다.

목판 하나하나가 마치 숙달된 한 사람이 모든 경판을 새긴 것처럼 일정한 판각수준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것이 바로 국보 32호이자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적인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이다.

◆ 팔만대장경이 몇 백 년을 버틴 까닭

팔만대장경은 몇 백 년이 지나는 동안 나무로 만든 목판이 갈라지거나 비틀어지는 현상도 거의 없다. 좋은 나무를 골라 단단하게 건조했기 때문이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40~50년씩 자란 나무 중 굵기가 40cm 이상으로 곧고 옹이가 없는 산벚·돌배나무 등 10여 종의 나무를 사용했다.
벌채한 나무를 바람에 말리고, 바닷물 속에 1~2년간 담구고, 경판 크기로 자른 뒤 소금물에 삶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쳤다.

경판에 글자를 새긴 후, 서로 부딪히는 것을 막고 보관 시 바람이 잘 통하도록 경판 양 끝에 두꺼운 각목을 붙인 후 네 귀퉁이에 구리판으로 장식하는 마구리 작업을 했고, 옻칠로 마감했다. 목각판에 옻칠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

보관 장소도 팔만대장경이 오래 보존될 수 있도록 한몫 거들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지역(해발 700m)에 서남향으로 앉았다. 산 아래에서 북쪽으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자연스럽게 판전 건물을 비스듬히 스쳐 지나간다. 판전 건물은 네 방향으로 각각 마주 보도록 설계돼 건물 자체의 통풍이 원활하다.

게다가 건물 앞뒤로 난 특이한 창문도 자연스럽게 바람 길을 열어준다.
건물의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뒷면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기 때문이다. 큰 창을 통해 건조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만들었다.

이 간단한 차이가 공기의 자연 대류는 물론 적정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또한 땅을 깊이 파서 숯과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 등을 뿌리고 바닥을 만들었다. 이것은 습기가 차면 바닥이 습기를 빨아들이고 반대로 가뭄이 들면 바닥에 숨어 있던 습기가 올라와 자동적으로 습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조상의 지혜가 결집된 예술품이 바로 팔만대장경이고, 이런 까닭으로 인해 몇 백 년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조정래 작가의 <대장경>을 읽어보면, 팔만대장경 만드는 과정을 좀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시월이 끝나는 마지막 주, 해인사 인근에서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이 시작했다.

세계적인 우리 문화유산을 직접 보면서 가족과 함께 해인사 주변 길을 걸어보자. 부스럭 밟히는 낙엽 소리가 좀 더 의미 있는 가을로 성큼 다가 올 것이다. 
2017 대장경 세계문화축전 홈페이지 http://culture.hc.go.kr/80000


정종영 / 역사스토리텔링 전문작가 / didica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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